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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인터뷰

‘내 한마디로 사람을 감동시킨다’ 인권기자를 꿈꾸는 청년 송성환

노력하지 않는 꿈은 단순히 하늘에 매달려있는 별에 불과합니다. 대학 생활 초창기부터 자신의 꿈을 탄탄히 준비해온 여러분과 같은 대학생이 여기 있습니다.

이번 주 씨앗 인터뷰는 제 3의 권력(?)을 갖고 싶어하는, 어느 누구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송성환군과의 인터뷰입니다.


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4학년 송성환입니다.
보잘 것 없는 저를 인터뷰하다니... 일단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2. 서울대 학보사 편집장을 맡으셨는데요, 학보사에 들어간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목표로 하고 있는 직업이 언론 관련 직종,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자’라서, 대학에 들어가면 관련된 활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과 동기와 학보사 수습기자 모집 포스터를 보면서 “같이 저거나 해볼까”하고 얘기를 나눴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지원 하지않고 저만 지원 했더라구요.

어쨌든 그렇게 학보사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 때가 1학년 1학기이고, 편집장을 마치고 퇴임을 한 것이 3학년 2학기이니, 꼬박 3년을 학보사에서 일한 게 되네요. 짧은 시간동안 수습기자-정기자-차장-부장-편집장을 거치면서 직책에 맡는 일을 했는데, 역시 부장과 편집장 때 기억이 가장 많이 납니다. 30명 정도의 기자들을 관리하고 매주 발행되는 신문을 주관하고, 교수님들과 학생기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등 다른 학생들이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하며 쌓은 경험들이 아주 값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 학보사에서 생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듣고 싶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2007년 제가 기획했던 ‘신림동고시촌 유사성행위 업소’ 기획입니다. ‘스포츠마사지’라는 간판을 달고 성업 중인 유사성행위 업소에 대한 기획이었는데요, 당시 팀원 가운데 한 명이 유사성행위 업소를 직접 체험하고 르포 형식으로 쓴 기사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돼 학내외 각계각층으로부터 수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다른 일로 미대 교수님 한분을 취재하던 중에 그분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들어서 펑펑 울고, ‘아, 내가 학보사를 나가야 하나’라고 생각한 일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사태(?)에서 많은 걸 배웠는데요, 우선 의도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방법이 서툴면 좋지 않은 결과가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사가 가져올 반향을 예상했다면 굳이 악수를 둘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요. 또 아무리 제 나름대로 선한 의도로 노력을 해도 외부의 시선으로는 결과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창(窓)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이 사안을 다룰 때 얼마나 신중해야 되는 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4. 사진 동아리에서도 활동하셨는데 특별히 하게된 이유라도 있나요?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은 건 2006년 여름부터입니다. 학보사에 남는 카메라로 접한 DSLR 세상에 완전히 매료돼, 첫 월급으로 카메라를 샀고 지금까지 쭉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로 취미로 찍고, 가끔 취재할 때도 썼습니다. 사진동아리는 사실 친한 과 동기 몇 명과 만든 것인데, 잘 운영되지는 않습니다.




5. 요즘엔 어떤 일을 하시나요?

우선 학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한 학기를 휴학하긴 했지만, 그래도 3학년 2학기인데 전공뿐만 아니라 대학 수업에서 평점이 형편없는 상황이라 이번 학기는 일단 평점을 회복하고, 프랑스어 실력을 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소속의 홍보부에서 학생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보사 기자 시절에 홍보부 직원과 친분을 쌓아 지난해 12월부터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학보사와 반대쪽 입장에 서는 곳이 서울대 홍보부일텐데요, 그래서 기자 출신이셨던 지인 분께서는 ‘기자로 치면 출입처에서 일하는 것인데, 그건 기자로서 최대의 굴욕이다’라고 놀리곤 합니다. 활동을 한 지 넉 달쯤 돼 가는데, 학보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종류의 업무를 하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또 ‘새싹멘토링’이라는 중고생 멘토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새싹멘토링은 일주일에 두 번씩 고등학생 5명에게 수업하면서 멘토, 즉 조언자의 역할을 해 주는 활동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3년간 찐 15kg의 몸무게를 다시 원상복구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써놓고 보니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네요.


6. 중,고등학생들에게 멘토링을 해주신다고 했는데, 그 동기는 무엇이나요?

제가 속해 있는 단과대가 사범대다보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미리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참관실습을 일주일간 서울사대부중고로 갔는데, 이 때 교사라는 직업이 상당히 매력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에 학보사 후배 한 명이 추천해 지난해 12월 멘토링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얼마전 이 활동에 보람을 느낀 일이 있었는데, 지난주에 학교 측으로부터 ‘새로 시작하는 방과 후 활동이 많아 더 이상 멘토링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통보가 왔는데 아이들이 활동을 계속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해서 계속할 수 있게 됐습니다. 참 아이들이 고맙기도 하고, 앞으로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7.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있다면 언제인지 듣고 싶네요.

아직 어릴뿐더러, 저 스스로 인생을 꽤 평탄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커다란 터닝 포인트는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장 큰 터닝 포인트가 된 시점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아, 그전에 간단히 제 주변 소개를 해야할 것 같은데, 일단 제 고향은 전남 신안군에 있는 섬이구요, 누나가 셋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시골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이유로 초등학교 6학년부터 4살 위인 막내누나와 함께 광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보냈는데요, 사춘기를 거의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나름대로 앞길에 대해서도 생각해봤고, 현실적인 생활상의 여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가족들로부터 거의 간섭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다행히 샛길로 빠지지 않고 착실하게 공부한 건 저 스스로도 살짝 대견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앞서 계속 나온 이야기가 지난해 12월, 즉 학보사를 퇴임하면서 시작한 일들이 많아서 지난해 12월도 어떻게 보면 작은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네요.




8. 나만의 꿈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 야망(?)은 ‘내 한마디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끔 하고 싶다’입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아마도 ‘인권’이라는 분야에 쓰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제 장래를 결정하는 데 터닝 포인트가 된 건 고2 때였네요. 친구들과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몸을 닦으면서 TV를 봤는데 ‘국제가족’, 즉 혼혈국민에 대한 캠페인이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40대 정도 되는, 태어나서부터 한국인인 혼혈인이 3명 정도 소개되며, 이들이 우리와 똑같은 한국인이라는 내용의 캠페인이었습니다. 그때 ‘아, 내 마음속에도 이런 편견이 있구나’란 생각을 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많는 차별을 없애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가 됐습니다.

그리고 제 경우에도 그랬고, ‘언론’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기에 저 역시 언론직에 종사하면서 제 꿈을 이뤄나가고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9. 그 꿈을 위해 특별히 준비하는 것이 있나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학보사 일이나 홍보부 활동처럼 대학생활에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관련활동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은 많이 부족하지만 전공인 프랑스어를 살려 국제적인 활동도 하고자 합니다. 물론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 없이 지금 하고 있는 활동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10. 원하는 일 또는 꿈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의 이야기를 주신다면?

제가 어떻게 감히 말하겠어요. 그래도 모든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감히 조언하고 싶네요. 학보사 생활을 하며 많은 교수님들과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났는데요,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조언하는 것은 거의 비슷하더라구요.

이른바 ‘엄친아’라고 불리는 ‘쟤’의 공포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나가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는 길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구요.





11. 올해의 계획이 있다면 듣고 싶네요.

우선 학점을 좀 회복하고, 프랑스어 실력을 쌓고 싶습니다. 그리고 학교 연수 프로그램을 활용해 프랑스로 잠깐이나마 공부 겸 여행을 하러 갈 생각입니다. 내년에 군입대를 예정하고 있어서 올해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해 볼 생각입니다. 바람이 있다면 멘토링하고 있는 학생들의 성적도 조금 올랐으면 좋겠네요.



:: 유니멘토 인터뷰팀 2009년 3월 18일자


 씨앗프로필

  이름 : 송성환
  소속 : 서울대학교 불어교육학과 / 서울대 홍보부 취재기자
  좌우명 : 내가 믿고 가는 길이 최선의 방법이